건축 역사_로마 ~ 페르시아

2023. 1. 18. 19:26건축

로마 건축

로마는 기원전 수백 년간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도시들을 정복했고 이후 서구의 상당수를 정복했다. 로마 지배권의 문제는 스페인에서 그리스, 카르타고,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지역들의 통합을 포함한다. 로마의 지배는 알려진 세계를 넘어서 확장되었고 '에쿠메네'를 구성하는 무력화된 수많은 문화는 정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제시했다.

로마 건축의 일관성을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연습에서 유래한 새롭게 발견된 이론의 현실화와 구체화한 공간성을 통해서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로마의 포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공적인 참여가 의례의 구체적인 실행에서 점차 삭제되고 건물의 장식에 표기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건물이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여 공간을 대표하는 효과를 갖는, 줄리우스 시저에 의해 시작된 포룸루리움에서 오늘날 광장의 시발점을 볼 수 있다.

로마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실제의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신성함의 표현을 선택했을 때, 장소의 소통적 환경에 인위적인 조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의 건축과 공학의 진보나 전장의 수확으로서 얻은 대리석 채석장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콘크리트나 아치 같은 발명은 로마 건축에 전체적으로 새로운 양식을 부여했고, 자연스럽게 돔과 열주로 공간을 감싸고, 지상을 제국적인 지배성과 시민의 질서로 뒤덮었다. 이는 또한 점점 복잡해지는 새로운 건물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변화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콜로세움, 거주 구역의 분리, 더 큰 병원과 아카데미 따위가 그 결과물이다. 길과 다리와 같은 인프라의 구축이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은 아치, 궁륭, 돔 등 이전에, 특히 과거 유럽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던 것들을 널리 사용하고 만들었다. 그들의 로마 콘크리트에 대한 발전적인 사용은 제국이 존속했던 시기에 유례없는 규모의 공공건물 건설을 야기했다. 이는 신전, 목욕탕, 로마 항구, 수도교, 다리, 개선문, 원형경기장, 무덤, 서커스 극장, 그리고 제국 후기의 교회를 포함한다. 로마의 고대 건축물 목록을 참고하자.

로마의 돔은 볼트형 천장의 건설을 가능하게 했고 덕분에 로마의 판테온이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과 같은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장소의 지붕을 올릴 수 있었다.

고트프리트 리히터와 같은 예술 역사가는 1920년에 로마의 건축적인 혁신을 개선문의 존재로서 규정했으며, 이 땅의 힘의 상징이 어떻게 서로마제국의 말에 기독교의 성당으로 변화하고 이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아치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부활을 나타내기 위해 제단의 뒤에 세워졌다. 그들의 감명스러운 수도교, 특히 퐁뒤가르, 세고비아와 로마의 수도교와 같은 남아있는 예시를 통해 아치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생존은 그들의 재료와 설계의 견고함의 실증이다.

 

비잔틴 건축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동쪽의 비잔티움(콘스탄티노폴로 개명되며 현재는 이스탄불로 부른다.)으로 옮겼을 때, 330년 이후에 로마 제국에서 비롯된 뚜렷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실체로서 점차 나타났다. 제국은 1000년 이상 지속되었고, 극적으로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에 영향을 미쳤으며,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을 오스만 튀르크에게 점령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오스만 건축으로 이어졌다.

초기 비잔틴 건축은 로마 건축의 연장선에 있었다. 교회 건축에 그리스 십자가 계획을 사용한 특이한 양식이 점차 나타난 것을 의미하며, 이는 양식의 변화, 기술적인 진보, 정치적인, 영토적인 변화는 근동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건물들은 기하학적인 복잡성이 증가하였고, 벽돌과 회반죽은 중요한 공공 구조물의 장식에 돌과 함께 쓰였고, 고전 순서가 더욱 자유롭게 사용되었고, 모자이크가 조각 장식을 대체하였고, 복잡한 돔이 거대한 기둥 위에 세워졌고, 창문이 내부를 부드럽게 비추기 위해 설화석고의 얇은 층을 통해 빛을 투과했다. 하기아 소피아를 참고하자.

페르시아 건축

이슬람 전의 건축은 이란고원의 다양한 문명에서 유래한 3~4천 년 간의 건축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란의 이슬람 건축은 이슬람 이전의 선조에게서 발상을 끌어냈고, 반짝이는 타일, 무늬를 새겨진 스투코, 패턴이 있는 벽돌 작업, 꽃무늬 모티프, 캘리그래피로 풍요롭게 장식된 표면만큼이나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형태를 가졌다. 이란은 문명의 요람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에 인정받았다. 

엘람, 아케메니드, 파르티아, 사산 제국의 각 기간에 이를 적용한 다른 문화에까지 넓게 퍼져나간 위대한 건축이 창조되었다. 이란이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기로 한 결정 같은 피해를 겪었지만, 그 고전적인 건축에 대한 조망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유적이 남았다.

아케메니드 왕조는 거대한 규모의 건축을 했다. 예술가들과 그들이 사용한 재료들은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였던 그들의 모든 영토에서 동원했다. 파사르가다에가 기준을 정했다. 도시는 정원, 다리, 궁전과 개방된 기둥 형태의 파빌리온을 동반하는 거대한 공원 안에 배치되었다. 파사르가다에와 왕 중의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페르세폴리스와 수사에는, 제국의 국경의 드넓은 범위를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후기의 기록이 있는 층계들이 있었다.

 

전기 페르시아 건축에서는, 반원형이나 타원형의 지붕이 큰 관심을 받았고, 커다란 돔을 건설하는 데 탁월한 기술을 보여주는 사파비 건축으로 이어졌다. 독일 고고학자인 디트리히 허브는 돔은 페르시아 건축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돔은 특히 사파비 시기의 이스하판에서 상점가와 모스크의 구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란의 돔은 구성요소의 비율, 높이, 형태의 아름다움, 돔 모양의 둥그스름함으로 구분된다. 돔의 겉면은 대체로 모자이크로 뒤덮여있고, 신비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사파비 왕조 시기에 이스파한은 거대한 내부 공간이 있는 높은 건물을 짓는 지식을 이용해 위엄을 얻고자 했다. 당시 지어진 이스파한의 이맘 광장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광장이다. 하지만 장식의 질은 14세기, 15세기에 비해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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